선생님의 한마디

11 Comments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에, 노래부르는 것에 꽤나 관심이 많았었다. 그리고 낭랑한(?) 또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기도 했었기에 학교에서 어린이 합창단을 뽑을 때 나가거나 교회에서 성가대를 꾸준히 하곤 했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시절 성가대 연습을 하던 어느날, 애들이 노래를 너무 작게 불렀었는지 선생님이 좀 크게들 부르라고 주문을 할 때 "저는 크게 부르고 있어요" 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그 선생님은 너는 크게 불러도 도움이 안된다는 내용의 말을 했었던 것 같다.

분명 농담이었을테지만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됐었던지, 그 이후로 한참을 성가대를 하지 않았었고, 그래도 얼마정도 후에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성가대에 다시 서기도 하고 음악시간에 열심히 노래부르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음치라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는 공중 앞에서 노래 하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나는 왜 잘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무거운 마음을 갖고 지내다가, 무거운 마음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은 고등학교때 또 다른 선생님에 의해서였다.

고등학교 시절(2학년때였는지 3학년때였는지…) 음악 시간에 음악 선생님께서 방학동안 배워오신 "사랑가"를 가르쳐주셨고, 나는 무거운 마음은 가졌으나 좋아했기 때문에 그리고, 시험을 사랑가로 치른다고 하는 말 때문에 열심히 배우고 였습했었다.

그리고 시험을 치루는 날. 선생님은 나중에 다른 말 하지 못하도록 녹음을 해 놓으신다며 한 명 한 명 녹음기 앞에서 사랑가를 부르게 하셨다.

어찌나 무섭던지 덜덜 떨면서 사랑가를 부르는데 다 부를때까지 그만 부르라는 말씀을 안하시더니, 다 부르고 나서 자리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는 다른 노래를 한 번 불러보라고 하시더라.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채, 게다가 너무 긴장해서 2절까지 부르려고 했을 정도로 정신 없이 가곡을 하나 불렀다.

2절까지 부르려고 하는 것을 멈추시고는 하시는 말씀이

"진중이 같은 애를 왜 그냥 뒀니, 얼릉 중창단에서 데려가라"

당장 중창단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 친한 친구와 같이 노래도 만들고 만든 노래로 청소년 가요제에 나가보려고도 했을 정도로(음악 선생님께 감수까지 받았지만 몇가지 사정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근래에는 직장인 밴드도 했었고, 결혼식 축가도 자진해서 불러줄 정도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만약에 국민학교때 그 선생님도 나에게 "그래 너는 목소리가 커서 좋구나" 라고 말해줬으면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블로거분들 중에 선생님을 꿈꾸는 분들이 꽤 많이 보인다. 특히 골빈넷에 기거하고 계시는 올빼미님께서는 곧 선생님이 되신다고 한다. 그래서 전부터 주제넘지만 한 말씀 드리고 싶었는데 이제야 글을 풀어놔 보았다.

선생님의 한마디는 아이들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부디 좋은 선생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

꼬랑지. 다른 얘기지만 군대를 갔다오면서 노래방에서 3-4시간을 보내도 쉬지않던 목이 이제는 한두곡만 불러도 쉬어버리게 되었다..오호 통재라…

11 Comments (+add yours?)

  1. Maney
    Feb 20, 2006 @ 01:40:58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역시 어릴 적에는 어른들의 한 마디가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2. byblog
    Feb 20, 2006 @ 02:03:18

    즉 그 선생님이 그 말을 하지 않으셨다면 올블로그는 지금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3. Arnie
    Feb 20, 2006 @ 04:30:22

    어린 아이에게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수많은 사례들이 말해주고 있지요. 아이들에게 못할 소리 하는 건(설령 그게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천벌 받을 짓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을 해주는 것의 효과도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죠.

  4. 흠냐
    Feb 20, 2006 @ 04:55:12

    그렇지요. 사소한 기억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하죠.
    치졸하지만 이제 30대를 바라봐야하는 나이인데도
    아직도 어른들이 밉습니다. -┏
    나이들어 비슷한짓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때도 있죠… 산다는건 어릴때나 나이들어서나 참 힘든일입니다.
    지금은… 네.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할까요…

  5. 내꽃연이
    Feb 20, 2006 @ 10:56:54

    제가 결정적으로 미술을 하게 된 이유도…

  6. 현명한 별
    Feb 20, 2006 @ 11:21:01

    어릴적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아직까지도 가요방이 젤 싫어요.

  7. 광푸아루
    Feb 20, 2006 @ 13:15:02

    한 가지.. 오타네요.
    ‘오호 통재라’예요.

  8. 와니
    Feb 20, 2006 @ 20:32:08

    아 정말 동감합니다.
    전 중학교때까진 공부 못한다고 선생님들이 다 욕하고 구박만 하셨는데;

    중2때 선생님이 굉장히 열린 교육을 하시던 분이라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셨죠. 교육자의 역할이란게 무척 중요한것 같습니다~

  9. 모모♥
    Feb 21, 2006 @ 01:22:15

    맞아요, 특히 어렸을땐 꼭 선생님만이 아니라,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그냥 지나치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평생가기도 하죠ㅜㅜ

  10. 죽은신문의 사회
    Feb 21, 2006 @ 08:33:04

    중학3년때 만났던 담임이 그분이 아니고 다른분이었으면
    지금의 제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잘못을 선생님께 돌리는 제자신이 허약하고 싫지만
    앞으로 제자식에겐 그런 분위기의 학교근처도 가지못하게…
    아니 가지않길 바랍니다.

  11. 올빼미
    Feb 22, 2006 @ 12:50:49

    아아.. 해커님의 글뿐만 아니라 여기 달린 댓글들도 저의 등을 매섭게 후려치는 채찍같네요. 비록 기간제 교사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이 이야기들,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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